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베트남 관계 (문단 편집) === 21세기 이전 === 베트남은 자체적인 역사 기록은 [[한국]], 심지어는 [[일본]]에 비해서도 늦은데다가, 그 양이나 질도 [[조선왕조실록]] 등을 남긴 한국만큼 꼼꼼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때문에 전근대 [[베트남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사기(역사책)|사기]], [[신당서]], [[명사(역사책)|명사]] 등등 [[중국]] 사서의 외국전을 주로 참조하는 수 밖에 없다. 다만 베트남은 수천년간 중국([[한나라]], [[수나라]] 등)에 복속과 독립을 반복해 [[한무제]]의 [[남월]] 정벌과 [[쯩 자매]]의 봉기를 시작으로 필사적으로 투쟁해온 역사가 있기에 여러모로 사이가 나쁘다. (자세한 내용은 '''[[베트남/역사]]''' 문서 참고). 그런데 현대에 와서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사이가 개선되기도 하였다. 많은 [[북베트남군]] 지휘관들이 중국에서 훈련을 받았고, [[중국인민해방군]]과 중국 군사고문단이 [[북베트남]]을 도와 비공식적으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이때 전사한 중국군은 수천명에 이를 정도였다. 베트남의 국부였던 [[호찌민]]도 [[삼국지]], [[수호전]]을 즐겨 읽었고, [[베트남 인민군]]의 명장이자 호찌민의 심복이었던 [[보응우옌잡]] 장군 역시 생전에 [[손자병법]] 등 고대 중국의 병법서들에서 나오는 전략들을 활용/변형하여 군사 작전을 계획할 정도로 중국 문화와도 연관 깊었다. 이렇듯 [[호찌민]]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였고, [[1975년]] [[베트남 통일]] 이후 사회주의 국가로 많은 교류를 할 것처럼 보였으나... 그런 호찌민도 너무 중국에 붙으면 코 꿰인다고 경계했다. 특히 자신들과 직접 싸웠던 [[미국]], [[프랑스]]보다 [[중국]]을 더 경계했을 정도다. [[1960년대]] 말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일어날 당시 호찌민은 '이건 인민을 위한 사회주의 정치가 아니다'라며 [[문화대혁명]]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호찌민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계속되고 있던 [[1969년]]에 심장병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중국에 대한 예견은 과거의 사례를 보아도 그렇고, 결국 [[중국-베트남 전쟁]]이 터짐으로서 옳았음이 증명된다. 거기다 현대에선 과거의 사례와 함께 중국이 주변 국가들에 대해 야욕을 드러낸 면도 있었던 탓에 중국과 베트남은 같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임에도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 [[베트남 공화국|남베트남]]은 [[대만]]과 우호 관계를 맺었으며, 대만은 월남전때 남베트남을 지원하고 [[미군]]을 위시한 연합군에 파병하러 했으나, '''남베트남이 막았다.''' 결국 소규모 파병하긴 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에서 반중 감정이 상당한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중국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중국은 [[1974년]] 남베트남의 영토이던 [[파라셀 군도]]를 무력으로 침공해 병합했다. 이는 현재까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통일 후에, [[베트남]]은 남베트남에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들을 탄압했다. [[1980년대]](통일 직후 말고) 한국에도 자주 찾아왔던 베트남의 [[보트피플]]은 대부분 화교였다. 한국에서는 이들을 반공선전의 소재로 이용했으나, 실제로는 공산주의보다는 [[민족]]갈등의 역할이 컸다. 베트남으로서는 중국계인 이들이 그런식으로 베트남을 떠나주면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고. 이런 화교탄압 외에도 친[[소련]]노선을 펴자 양국은 험악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시에도 [[북베트남]] 지휘부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북쪽으로 진격할 수 없는데다가 설사 쳐들어온다고 해도 베트남을 절대 집어삼킬 수 없는 [[미군]]보다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베트남을 침공, 병합하여 1천여년 간 지배하였으며 또다시 베트남에 쳐들어와서 20여년 간 통치한 끝에 쫓겨나가서까지 근현대까지 베트남의 종주국 노릇을 했던 게 중국이기때문. 그러한 중국-베트남 관계에 비추어볼때 '''이후 중국이 세력이 커져서 중국군이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전면개입을 한 다음 자국 영토라고 우기면서 강제합병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베트남/역사|사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베트남에게 한 것들을 보면 이해 안되는 행동은 아니다.]] 베트남이 친중노선을 걷던 [[민주 캄푸치아]]를 침공하자[* 이 때 중국과 미국이 베트남 견제를 위해 민주 캄푸치아를 지원하고 반대로 [[소련]]이 중국 견제를 위해 베트남을 지원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이 발끈하여 [[1979년]]에는 [[중국-베트남 전쟁]]까지 벌어졌고, 이 전쟁은 베트남의 저항이 거센데다 소련의 압박을 의식한 중국의 일방적인 전쟁 포기로 끝났지만 그 이후에도 [[1990년대]]까지 계속 국경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일단 [[1991년]]에 두 나라 사이에 공식적인 국교가 수립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후 평화조약을 맺어서 육지의 국경은 잠정 확정되었지만 이걸 중국이 지켜준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모든 국제 조약은 힘의 논리에 따라 준수 여부가 좌우된다. 정전협정만 해도 한국과 미국이 워낙 강하니까 [[북한]]이 전면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파기하겠다 말로는 해도 국지전 도발만 벌이는 선에서 끝낸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손떼고 한국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해도 지킬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조선로동당 규약]][* 북한은 당 우위의 집단이라 헌법보다 노동당 규약이 더 상위 규범이다. [[https://nkinfo.unikorea.go.kr/nkp/term/viewNkKnwldgDicary.do?pageIndex=1&dicaryId=51|#]]]으로 박아 놓은 동네다. 물론 남한의 국력이 현재 시점에서 북한의 국력을 압도하는 이상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은 현실성이 없다. 중국-베트남 관계는 이제 바다인 [[스프래틀리 군도]][* [[중국어]]로는 난사 군도, [[베트남어]]로는 장사 군도]에서까지 충돌 가능성이 생겨난 상황. 베트남은 혼자 중국을 상대하기는 벅찼는지 '''[[적의 적은 나의 친구|이제는 옛 적국인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베트남은 미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 호치민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 그러나 미국은 호치민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배격하였고 이는 베트남 전쟁의 원인 중 하나였다. 미국이 스스로 베트남을 적으로 만든 셈. 하지만 당시 국제 정세상 유럽 냉전 구도에서 주요한 역할인 프랑스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선 프랑스의 식민지인 베트남 독립운동을 외면할 필요도 있었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미국 내에서도 애초에 월남전의 [[프랑스|만악의 근원]]이 누구임? 하고 불평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